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근/지도자 경력 (문단 편집) === 스투 해설위원 임명과 출장코치 생활 === > "LG 감독에서 물러났을 때부터 SK 감독으로 다시 부임하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첫 2년은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 - 김성근 자서전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p.205 LG 트윈스에서 물러난 이후, 김성근은 떠돌이 생활을 계속했으며, 가장 메인으로는 스포츠·레저·연예·오락기사를 전문으로 다루는 일간신문인 스포츠투데이에서 해설위원으로 2년간 활동하였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29/2007092900157.html|#] 해설위원이라는 말 때문에 착각할 수 있는데, 신문사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방송 해설자가 아니라 일종의 칼럼 담당 해설위원이다. 사실 김성근은 방송국 정식 해설가로는 활동하기 어려웠는데, 가장 큰 문제는 발음 문제였다. 사실 1979년 야구 초창기에 김성근은 이미 동양방송에서 잠깐 해설을 했었으나, 당시 내용은 좋았으나 발음이 부정확한데다 공이 이빠이 들어왔어요" 같은 일본식 표현을 하다가 바로 잘렸다.[* 그 후임으로 들어온 것이 하일성이며, 그를 통해 하일성은 프로야구 초창기 전설적인 해설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김성근 감독이 방송에서 해설을 맡은 건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였다. 다만 이런 스포츠 분야 신문 해설위원이 그렇듯 그렇게 활동이 많았던 것은 아니고, 일종의 명예직에 가까웠다. > 김성근 전 LG 감독(61)의 요즘 ‘직업’은 ‘'''출장 코치'''’다. 초등학교서부터 대학, 동호인팀에 이르기까지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제주도는 물론 일본, 방콕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도 [[자비]]를 들여 다녀온다.''' > ---- > - [[http://ilyo.co.kr/?ac=print&entry_id=15867|[이영미 기자의 취중토크] ‘출장코치’하며 야인생활 김성근 전 LG감독]] 당시 김성근 감독의 주업은 오히려 출장 코치. 김성근은 2002시즌이 끝나고 LG 트윈스에서 해임된 후 2년 동안 주로 출장 코치(인스트럭터) 생활을 하며 지냈다. LG 감독에서 해임된 후 출장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LG 감독에서 경질된 이듬해인 2003년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성근 본인이 직접 밝힌 내용이다. 이 시기 김성근 커리어의 주요 사건 중 하나는 [[박찬호]]와의 인연이었다. 당시 박찬호는 2002년 FA 대박을 터뜨리며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2년도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에 이어 다저스부터 안고 있던 허리 부상이 악화, 2003년 시즌 7경기 29.2이닝 1승 3패 방어율 7.58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찍은 채 그대로 시즌 아웃되었다. 이에 박찬호는 당시 오키나와에 있던 김성근에게 투구폼 비디오를 전송, 도움을 요청하였고, 김성근 또한 이에 화답하여 ""투구 흐름이 끊기는 것은 많이 좋아졌지만 공을 던질 때 동시에 몸도 끌려나가 파워에서 손해를 보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공에 체중을 싣지 못한 채 팔로만 스윙하고 있다" 등 밸런스 관련 문제를 지적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1126588|#]] 2004년 초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서 다시 150km를 던지며 부활의 기미를 보였으나시즌 직전 허리 부상이 도지면서 역시 시즌 아웃되었다. 하지만 2005년 박찬호는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고, 2005년 7월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었다. 2006년에는 아예 당시 치바 롯데 마린스 코치로 임명된 김성근을 찾아와 특별 피칭 지도를 받았다. 그 결과였는지 2006년에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시즌을 소화하기 시작했으나, 다시 또 게실로 인한 장출혈과 빈혈로 시즌 후반 수술을 하게 되면서 로테이션에서 탈락하였다. 다만 플레이오프 때 부활하여 디비전 시리즈 1차전 등판,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었다. 당시 박찬호의 FA 계약은 역대 최악의 계약 중 상위로 꼽힐 정도로 최악의 계약으로 꼽힌다. 2002년 시즌을 시작한 이후 2005년까지 시즌을 제대로 소화한 것은 2002년과 2005년 딱 두번이었고, 그나마 성적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당시 쏟아진 한국 언론의 원색적, 비판적인 태도 때문에 한국 언론과의 관계도 최악이 되었다.[* 심지어 당시 대표적인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였던 [[민훈기]]와도 이때 관계가 틀어졌다.] 그 과정에서 박찬호와 몇 안 되는 소통의 창구였던 인물이 김성근. 김성근이 박찬호의 커리어에 얼마나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김성근의 조언을 들은 2004년 초 다시 150을 던지며 부활의 기미가 보였고 2006년에도 분위기가 좋았던 것을 보면 부정적으로 볼 정도는 아니지만, 허리 부상의 재발과 갑작스러운 장출혈 등 변수로 부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 다만 이 인연으로 박찬호 또한 스스로를 김성근의 제자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후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https://www.donga.com/news/Sports/article/all/20110223/35042328/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